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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곽

박진감 넘치는 조선 최고의 무예, 화성행궁 무예24기

 

 

 

 

박진감 넘치는 조선 최고의 무예, 화성행궁 무예24기

 

수원 화성행궁 앞에서는 ‘화성행궁상설한마당’이 개최되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오는 3월 24일 오후 1시에는 ‘화성행궁 상설한마당 개막 공연’으로 화성행궁 광장에서 정조대왕 어가행렬, 장용영수위의식, 무예24기 공연, 창작무, 무동놀이, 전통줄타기, 비밥, 마상재 등의 공연이 있고, 왕과 왕비 체험, 갑주 체험, 떡메 체험, 한지 만들기, 도자기 체험, 솟대 체험, 구슬 공예 등의 각종 체험 행사도 풍성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 무예24기 공연을 보러 화성행궁 신풍루에 모인 수많은 인파들

 

지난 주말인 3월 16일에 화성행궁 신풍루에서 무예24기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무예24기는 매주 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오전 11시와 오후 3시 하루 두 번 공연이 있다. 무예24기는 정조의 명을 받은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와 얼마 전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던 무예의 달인 백동수가 1790년에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의 실전 무예를 말한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어 있는 24가지 기술은 각 무술에서 사용하는 무기와 권법 등을 기준으로 구분되어 있다. 장창(長槍), 죽장창(竹長槍), 기창(旗槍), 당파(鏜鈀), 기창(騎槍), 낭선(狼筅), 쌍수도(雙手刀), 예도(銳刀), 왜검(倭劍), 교전(交戰),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마상쌍검(馬上雙劍), 월도(月刀), 마상월도(馬上月刀), 협도(挾刀), 등패(藤牌), 권법(拳法), 곤방(棍棒), 편곤(鞭棍), 마상편곤(馬上鞭棍), 격구(擊球), 마상재(馬上才)이다.

 

 ▲ 무예24기 공연, 드디어 시작...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전래의 무예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우수한 무예를 적극 수용하여 ‘24기(技)’로 정리한 무예교범서다. 무예24기는 화성에 주둔했던 당대 조선의 최정예부대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익혔던 무예로서 역사적 가치는 물론 예술적, 체육적 가치가 아주 높은 무형의 유산이다. 이곳 화성행궁의 북군영과 남군영에 주둔한 군사들 또한 24기 무예를 수련하여 행궁 호위에 최선을 다했다.

 

▲ 무예24기 공연, 드디어 시작...

 

자, 지금부터 박진감과 패기 넘치는 무예24기를 감상해보시라.

 

▲ 제일 먼저 궁수의 시범

 

▲ 매서운 눈으로 백발백중 명중

 

▲ 어떤 자세에서도 활을 쏘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

 

▲ 궁수들은 사라지고...

 

                                    ▲ 장창 시범

 

▲ 장창은 날카롭고 빠른 왜구를 제압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중 왜군이 지키고 있는 평양성을 공격할 때에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 낭선 시범

 

▲ 낭선은 가지를 그대로 남겨둔 대나무를 손잡이로 사용하는 병기이다. 전체 길이는 약 460㎝이고 끝부분에는 적을 찌르기 위해 철로 된 예리한 날을 부착하였다. 화살을 상당수 막아낼 수 있는 등 방어에 탁월하나 무겁고 부피가 커서 힘세고 훈련된 사람이 아니면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 쌍검

 

 

 

 

 

▲ 본국검, 제독검, 예도, 쌍수도 시범

 

 

 

 

 

 

 

▲ 등나무로 만들었다는 등패는 작고 날엽한 군사들이 사용했으며 낭선과 짝을 이룬 진법에 주로 사용했다.

 

▲ 월도

 

▲ 월도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이 썼던 청룡언월도와 유사하며 동선이 크고 위력이 있어 사도세자가 즐겨 수련했던 무기였다.

 

▲ 월도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이 썼던 청룡언월도와 유사하며 동선이 크고 위력이 있어 사도세자가 즐겨 수련했던 무기였다.

 

▲ 장검

 

▲ 등패

 

 

 

▲ 쌍검

 

▲ 권법

 

▲ 권법

 

▲ 곤방

 

 

 

 

 

 

 

 

 

▲ 원앙진

 

▲ 원앙진은 명나라 척게광이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고안한 진법으로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 탈환 때 크게 위력을 발휘했다고 전해진다. 깃발을 들고 있는 분대장이 죽으면 나머지 군사들도 이유불문하고 모두 참수하여 죽기살기로 싸웠다는 진법이다. 대장 1명, 등패수 2명, 낭선 2명, 장창수 4명, 당파(삼지창) 2명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 진검 시범

 

▲ 진검

 

 

이곳에선 매주 일요일 2시에 210여 년 전 화성에서 펼쳐진 ‘장용영수위의식’이 화성행궁 앞 신풍루에서 재연된다. 장용영은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 창설한 국왕 직속의 친위부대였다. 1785년 정예의 군사를 선발하여 만든 국왕호위부대 장용위를 확대 개편하여 중앙군영인 훈련도감을 제치고 총병력 13000여 명 규모의 최대군영으로 육성됐다. 정조는 1789년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 화산으로 이장한 뒤 현륭원이라 하고 수원 장용영 소속 병력을 주둔시켜 호위를 전담케 했다. 1793년에 수원부를 화성으로 바꾸고 화성에 장용영 외영을 설치하여 군사도시로 육성했다.

 

 

사실 필자도 예전 무예24기를 잠시나마 익힌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아직 무예24기가 복원이 덜 된 상황이었다. 육군사관학교 교수였다가 통혁당과 남민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임동규 선생이 감옥에서 빗자루로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복원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나의 기억으론 광주에 본당인 경당이 있었고 각 지역으로 사범이 파견되어 가르치는 정도였다. 주로 권법과 본국검, 제독검, 예도 등을 배웠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에 수련했던 목검이 나의 서재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20년 전 무예24기를 수련했던 당시의 목검이 아직도 나의 서재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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