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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선, 남도 800리

소고기 구워먹는 간이역 '진상역'을 아시나요. 경전선 800리

 

 

 

 

 

 

소고기 구워먹는 간이역 '진상역'을 아시나요

【경전선 남도 800리, 삶의 풍경】 광양시 진상면의 경전선 진상역

 

 

 

 

 

 

 

 

진상역은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소재지에 있는 경전선의 철도역으로 하동역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처음 정차하는 간이역이다.

ⓒ 김종길

 


광양시 진상면, 경전선 간이역인 진상역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예전에 대합실이었던 곳에서 식사하면서 지나가는 기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1968년 영업을 시작한 진상역은 2004년 무배치간이역이 되었다가 2009년에 역사가 임대되어 한우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진상역은 진상면 소재지의 너른 들판에 자리하고 있다. 옛 대합실이 식당으로 임대된 후 새로이 생긴 대합실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통로와 두서넛 정도 앉을 만한 나무의자가 전부다. 기차시간표와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어지러이 적어놓은 글씨가 아니라면 이곳이 대합실인 줄도 모르겠다.

옛 대합실이 식당이 되면서 새로이 생긴 작은 대합실
ⓒ 김종길

 


역 앞 광장은 간이역치곤 제법 너른 데다 차가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하나같이 향하는 곳은 역사 옆 정육판매점, 여행자도 따라갔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바로 옆 역사 식당에서 구워먹는 다는 것은 이미 알고 온 터였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양승래(49)씨는 이곳 토박이다. 진상역이 무인역이 된 뒤 역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게 되자 2009년에 학교가 가까워 우범지대가 될 것을 염려한 당시 광양역장, 순천역장, 진상면 청년회장, 면장 등이 모여 역 부지의 활용 방안을 논의했다.

진상역이 들어설 때에도 면민들이 힘을 모았는데 진상역을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지역을 활성화시키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처음엔 지역단체에 의뢰하여 농산물 판매점으로 추진하기로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무산됐다.

2009년에 역사가 한우식당으로 임대되어 사용되면서 조용한 시골 간이역은 일대의 명소가 되었다.
ⓒ 김종길

 


 

이곳 토박이로 정육점을 운영하는 양승래(49) 씨는 소고기의 맛과 품질, 가격을 자신했다.
ⓒ 김종길

 


2009년에 진상면 농업경영인연합회와 청년회에서 식당으로 최초 계약을 해서 시작했다가 2년 전에 지금의 양씨가 개인 자격으로 식당을 임대하여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임대는 최초 3년으로 2012년 10월에 종료되었으나 별 문제가 없으면 1년마다 연장이 가능하단다.

식당의 고기는 전라도와 이곳 광양 일대의 한우암소만 쓴다고 했다. 품질은 최상이라는 걸 자부했다. 소 잡는 날과 도축일자가 정육점 안에 적혀 있다. 소 잡는 날은 화, 수, 목, 금으로 매주 4마리다. '한우 암소가 아닐 경우 100% 보상해 드립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에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이고 평일이고 식당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넘쳐났다고 한다. 올해는 경기 탓인지 영 바닥을 치고 있다며 양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봄철 매화축제나 고로쇠, 여름 휴가철에는 손님들로 여전히 북적했다고... 역사 주위에 봄에는 유채도 심고, 가을에는 코스모스도 심어 나름 관리도 하고 식당 운영에도 신경을 쓰고 있단다. 2015년 진주 광양 간 철도가 복선화되면 지금의 역 아래로 신역이 생기는데 그렇게 되면 이 역도 어떻게 될지 운명을 알 수가 없다.

1968년 영업을 시작한 진상역은 2004년 무배치간이역이 되었다가 2009년에 역사가 임대되어 한우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 김종길

 


"기차를 타고 오는 손님들도 많아요, 참 신기해하죠. 그런 분들을 위해 저는 최상의 고기를 대는 거죠. 좋은 고기를 써야 소문이 좋겠죠. 만약 제가 고기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 누가 여기를 찾겠어요. 장사도 장사지만 코레일에서 임대해서 건물을 쓰고 있으니 이미지도 중요하니까 늘 신경을 쓴답니다.

가격은 인근의 식당에 비해 3~4배 정도 싼 편이죠. 중간유통을 없애고 도축장에서 바로 가져오니까요. 누구나 오셔서 마음껏 드시게 해야죠. 서민들에게 맞춘 단가이지요. 어차피 이곳 장사는 진상면을 겨냥한 게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하니까요. 아무래도 지역적인 관계로 광양시와 전남 동부, 하동과 서부경남에서 특히 많이 오지만요."

간이역에서 소고기를 팔게 되면서 생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여행자의 주문에 양씨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인터뷰하는 동안 여행자는 정육점 내부를 간간히 흘겨보았다. 청결했다. 상당히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 간이역이라 다소 어수선하고 소박할 것이라 여겼던 첫 마음이 금세 바뀌었다. 청결도 맛도 좋았다.

이곳의 소고기는 시중에 비해 3~4배 정도 값싸다. 사진은 치마살
ⓒ 김종길

 


 

바로 옆 정육점에서 산 소고기를 식당에서 구워 먹고 곰탕과 장터국밥까지...
ⓒ 김종길

 


이곳에서 고기를 먹는 방법은 특이하다. 정육판매점에서 고기를 산 후 옆의 식당으로 가서 고기를 구워먹으면 된다. 고기를 사가면 식당에선 각종 야채와 밑반찬,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재료비 명목으로 1인당 3000원을 받는다. 우리는 치마살을 샀다. 100g에 6300원이었다.

고기는 말 그대로 살살 녹았다. 산지직송이라서 그런지 소고기 특유의 부드러움과 입 안 가득 육즙이 고였다. 구운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없는 여행자의 처지만 아쉬울 뿐....

고기를 먹은 후 우리나라 사람이면 당연히 밥도 먹어야 할 터... 장터국밥과 곰탕은 원래 6000원인데, 장터국밥은 고기를 먹은 후 주문을 하면 1000원이 싼 5000원에 먹을 수 있다. 우리는 곰탕과 장터국밥을 주문했다. 곰탕은 평범한데, 뜨끈뜨끈한 장터국밥은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도 그렇거니와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기적소리가 났다. 식당 창문으로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메라를 들이댔다. 식당 앞으로 기차가 들어오다니... 아 참, 식사에 열중하다 보니 이곳이 원래 간이역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한참 식사를 하고 있는데 기차가 지나갔다.
ⓒ 김종길

 


 

오후 두 시가 넘어가자 식당을 빠져나간 손님으로 간이역은 다시 한산해졌다.
ⓒ 김종길

 


간이역에 잠시 정차한 기차는 미끄러지듯 창을 스쳐갔다. 우리가 타고 갈 기차가 올 시간도 머지않았다. "간이역 가면 뭐하겠노. 소고기 사먹겠지." 딸애가 두두룩한 배를 두드리며 개그콘서트의 개그를 흉내 내는 바람에 아내와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는데 배가 부르니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식당 입구에 행정안전부, 전라남도, 광양시가 지정한 착한가격모범업소라고 적혀 있었다. 매화축제 때에는 진상역 앞 광장에서 다압 매화마을로 가는 버스노선이 연결된다. 앞으로 진상역과 광양역과 연결되는 버스노선이 활성화되면 이곳은 많은 이들이 찾는 간이역의 명소가 될 것이다.

진상역은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소재지에 있는 경전선의 철도역으로 하동역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처음 정차하는 간이역이다.
ⓒ 김종길

 


 

"도서관여행이라고 책만 보고 가는 게 무슨..."

 

진상역에서 내려 면 소재지 장터를 지나 제법 너른 시내가 흐르는 다리를 건넜다.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몇 채의 집들이 아늑하게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얼마쯤 가니 길 왼편에 공사판 철제로 만든 듯한 '농부네 텃밭 도서관'이라고 적힌 푯말이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다.

사실 이곳을 찾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진상역을 취재하면서 인근에 갈 만한 곳이 없나 싶어 지도를 보던 중 '텃밭 도서관'이라는 이색 단어에 눈길이 갔던 것이다.

도서관은 마을 안쪽에 있었다. 창고로 쓰는 건물에 선거 벽보와 함께 내걸려 있는 '오지게 사는 촌놈'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보자 이곳이 텃밭 도서관임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농장 입구를 들어서니 왼편이 바로 도서관이다.

농부네 텃밭 도서관
ⓒ 김종길

 


 

농부네 텃밭 도서관
ⓒ 김종길

 


조심스럽게 출입문을 열자 양탄자가 깔린 길쭉한 서재가 나타났다. 양쪽 벽으로 길게 늘어선 서재에는 책들이 빼곡 꽂혀 있었고 앞과 옆으론 창이 나 있어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이미 신이 난 아이는 책 한 권을 뽑더니 탁자가 놓인 의자로 냉큼 가서 앉았다. 딱히 바쁜 일도 없고 해서 아내와 나도 책 한 권을 꺼냈다.

농부네 텃밭 도서관
ⓒ 김종길

 


 

농부네 텃밭 도서관
ⓒ 김종길

 


"천천히 보시고... 나중에 김장김치에 밥도 먹고 가요."

살며시 문을 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농장의 주인인 듯한 사내가 한마디 건네고 얼른 사라졌다. 사내는 잠시 후 다시 나타나더니 서재 옆문을 열쇠로 열었다.

"원래 이곳은 평소에 열어두는 곳이 아닌데 멀리서 왔으니 보여드리지요."

무슨 일인가 싶어 사내를 따라 문을 들어섰다. 놀랍게도 박물관 같은 전시공간이었다. 이것저것 추억의 생활도구들을 모았는데 한눈에 금세 친근감이 들었다. 오래된 풍금하며, 네 발 달린 여닫이 텔레비전하며, 녹슨 다리미, 교복 입을 때의 가방, 재봉틀, 똥장군, 지게, '공상'으로 불렀던 탈곡기 등 추억의 물건들을 죄다 이곳에 모아 놓았다. 이쯤 되니 이곳을 만든 장본인이 어떤 사람인가 사뭇 궁금해진다. 이곳의 주인인 사내는 서재환(57) 관장이다.

도서관 옆에는 각종 추억의 생활도구들을 전시한 공간이 있다.
ⓒ 김종길

 


 

도서관 옆에는 각종 추억의 생활도구를 전시한 공간이 있다.
ⓒ 김종길

 


농부네 텃밭 도서관, 마음껏 뛰어놀다

서 관장이 처음 도서관을 연 것은 30여 년 전의 일이었다. 마을에서 도서관으로 운영하다 10년 전쯤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지금의 전시공간까지 도서관으로 쓰였을 만큼 규모가 커서 보유하고 있던 책이 3만여 권에 달했는데 계속 줄어들었단다.

마을에서 운영할 때는 면소재지 학교 앞에 있기도 하고 도서관이 활성화되어 각종 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선 책 외에는 특별하게 문화놀이가 없으니 도서관이 각광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시골에서의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던 경운기 가득 책을 싣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독서를 권장하기도 했다.

텃밭 도서관에는 원두막과 식물원·연못·텃밭 등이 있어 아이들이 오면 언제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되어 있다.
ⓒ 김종길

 


이곳의 주인장인 서 관장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문화를 강조했다.

"여기까지 와서 책만 보고 가면 그게 무슨 제대로 된 도서관 여행이겠소. 책이 있는 도서관이라고 해서 기차 타고 도시락 싸서 유치원에서 많이들 오는데 대개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책만 보게 하고 돌아가는 선생님들이 있어요. 요즘같이 정보와 책이 넘치는 시대에 이런 시골까지 와서 책만 본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뛰어놀아야죠. 저기 배도 저어보고 마당에서 뛰어놀고 우물에도 가보고 풀도 만져보고 하면서 글을 써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오지 않겠어요."

꽁지를 단단히 묶은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올라간 그는 강단진 인상이었다. 체육복에 털신을 신은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띤 그의 얼굴엔 어떤 결기 혹은 다부짐이 엿보였다.

농부네 텃밭 도서관
ⓒ 김종길

 


그의 말은 최초의 생태주의자, 환경론자로 불리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자연관과 너무나 흡사했다.

'라코타 족 인디언들에게는 모든 생명체가 인격을 갖추고 있었다. 오직 모습만 우리와 다를 뿐이었다. 모든 존재들 속에 지혜가 전수되어 왔다. 세상은 거대한 도서관이었으며, 그 속의 책들이란 돌과 나뭇잎, 실개천, 새와 짐승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지의 성난 바람과 부드러운 축복을 나눠 가졌다. 자연의 학생만이 배울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배웠으며,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이었다.'

서 관장에게 있어 도서관이란 이미 자연 그 자체였다. 자연이라는 도서관 안의 '돌과 나뭇잎, 실개천, 새와 짐승들'이 그에게는 책이었다. 그의 도서관에는 원두막과 식물원·연못·텃밭 등이 있어 아이들이 오면 언제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오늘은 카페 회원들이 모여 김장을 담그는 날. 서울, 목포, 진도, 마산, 진주 등 전국에서 회원들이 모였단다. 몇 포기를 담그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이 제각기다. 어떤 이는 200포기, 어떤 이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500포기라 했고, 또 다른 이는 뻥 치지 말라며 300포기가 맞다고 했다. 어느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어 멍 때리고 있었더니 모두 한바탕 유쾌하게 웃어 젖혔다.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농장에 모여 김장을 담그고 있다.
ⓒ 김종길

 


"저 경운기 서울 갔다 온 경운깁니다."

연못가의 경운기를 신기해하자 농장의 젊은 분이 말했다. 서울까지 가는데 1주일이 결렸단다.

"그때가 2007년이었지요. 소나무도 베어내고… 마을 산에 공장이 들어선다고 했는데 정체를 알 수 없었지,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 일로 서 관장은 서울에 갔었다, 억울한 심정을 알리기 위해 경운기 가득 책을 싣고 1주일 꼬박 걸려 서울에 갔었다. 4~5년 싸워서 막아냈지만 그때의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다. 서 관장은 끝내 그때의 싸움을 말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행자도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서울까지 갔다 온 경운기 도서관
ⓒ 김종길

 


오지게 사는 촌놈, 경운기 몰고 서울 가다

1987년부터 경운기 짐칸에 책꽂이를 얹어 만든 '경운기 도서관'을 끌고 그는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았다. 그의 경운기에서 들리는 노랫소리를 듣고 집에서, 마을에서, 학교에서 사람들은 책을 빌리곤 했다.

그러던 그가 2007년 11월에는 광양을 출발하여 순천, 임실, 전주, 대전, 청주, 천안, 오산, 수원, 안산을 거쳐 서울 홍익대까지 경운기를 몰고 갔다. 가는 길에 도착하는 곳마다 '경운기 도서관'을 열고 책 교환행사를 가졌다. 그런 후 대구와 부산을 거쳐 다시 광양으로 돌아왔단다.

그가 이렇게 500km가 넘는 서울까지 경운기를 끌고 간 이유는 마을에 폐타이어 소각로 제조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아이들의 쉼터가 망가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볼 수만은 없어서였다. 공장이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 문화행사도 하고 천막농성도 하고 행정기관에 수없이 항의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누군가 크게 다치지 않기를 바랐던 그는 결국 결심했다.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공장대체부지 기금 마련을 위해 천리 길 서울까지 경운기를 몰고 가기로.

농장 난로에서 구운 군고구마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
ⓒ 김종길

 


난로 뚜껑이 열리자 잠시 어색했던 침묵이 깨졌다. 서 관장이 군고구마를 내어왔다. 작업장 안 난로에 넣어 두었던 군고구마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고구마 껍질을 벗겨내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소매를 걷어 김장김치 하나 뚝 떼어서 돌돌 말아먹으니 그만이다. 이 모양을 보고 강아지도 꼬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뛰어든다.

농장에는 우물이 있다. 수도만 틀면 물이 나오는 걸 보며 자란 아이들에게 물을 얻는데도 두레박으로 약간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그 물맛이 더욱 달다는 것을 깨우치는 듯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이웃집 처마에는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농부네 텃밭 도서관의 우물과 두레박
ⓒ 김종길

 


 

텃밭 도서관 옆 빈 농가의 곶감 말리는 풍경
ⓒ 김종길

 


'미련한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갑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세상을 일구어나가는 당신을 우리는 뒷골목 선지식이라고 부릅니다.'

도서관 한 구석 서 관장에게 주어진 감사패에 적힌 문구가 선연하게 들어온다. 이곳… 적어도 여행자에겐 그랬다. 비록 거창하고 세련되지는 않은, 소박하고 투박한 텃밭 공간이지만 세상 어디보다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작지만 큰 공간 '농부네 텃밭 도서관'은 진상역에서 1km 떨어진 시골마을에 있다.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청도마을에 있다.

농부네 텃밭 도서관이 있는 마을에서 본 진상역
ⓒ 김종길

☞ 진상역은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소재지에 있는 경전선의 철도역이다. 하동역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처음 정차하는 간이역이다. 2009년에 역사가 한우식당으로 임대되어 사용되면서 조용한 시골 간이역은 일대의 명소가 되었다.'농부네 텃밭 도서관'은 진상역에서 1km 떨어진 시골마을에 있다. 진상역에 기차는 하루에 왕복 5회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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