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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사람

허벌나게 큰 오일장, 여행의 참재미, 광양읍내시장

 

 

 

허벌나게 큰 오일장, 광양 여행의 참재미, 광양읍내시장

 

마침 자전거를 탄 노인 두 분을 만났다. 오일장 가는 길을 물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한 노인은 곧장 가라고 하고 옆에 있던 검은 점퍼 차림의 노인은 그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라며 왼편으로 돌아가서 골목으로 들어가야 된다고 했다. 사이좋게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오던 두 노인은 결국 시장가는 길을 놓고 서로 언성을 높이게 됐다. 당황한 여행자가 급히 고맙다고 넙죽 인사를 하자 노인 두 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자전거에 오르더니 주거니 받거니 서로 말을 건넨다. 얼추 보아도 이 두 노인의 관계는 아주 오랜 친구사이임을 알 수 있었다.

 

 

오일장을 찾은 건, 매천 생가에서 만난 문화해설사가 오늘이 마침 광양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며 오후에 가도 보통 장과는 달리 북적댄다며 꼭 가보길 권해서였다.

 

 

시장 초입은 여느 오일장과 엇비슷했다. 길 양옆으로 길게 늘어진 좌판 하며, 연신 고함을 질러대는 장꾼들 하며, 양 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사람들 하며, 입에 주전부리를 물고 눈을 두리번거리는 아이 하며, 손님이 찾지 않자 하릴없이 분주히 손을 놀리는 난전의 상인들 하며, 거나하게 취해 눈이 반쯤 풀린 사내들 하며...

 

 

아주 오래된 풍경도 보인다. 낡은 간판으로 보아 이곳 시장도 꽤나 긴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광양 오일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11년에 폐역이 된 광양역사에서 이곳까지 장터가 길게 이어졌다가 지금은 이곳에서만 열린다. 기차가 떠난 옛 광양역사에선 한때 오일장이 열렸음을 알리는 낡은 간판이 서 있다.

 

 

광양 오일장을 돌다 보면 눈에 띄는 것 하나. 시장 한쪽 골목을 따라 길게 늘어선 김을 파는 점포들이다. 사실 광양은 오늘날 우리가 먹는 김을 처음 양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망덕포구 인근 태인에 가면 김 시식지가 있다. 김 시식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김 양식법을 개발한 김여익 공을 기리는 곳으로 '김'이라는 명칭도 김여익 공의 성씨를 본 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 광양 읍내시장에선 김을 파는 상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즉석에서 김을 구워 파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잘 말린 김을 기계에 넣기만 하면 번지르르하게 윤이 나는 김으로 나온다. 근데 아쉽게도 광양에서 나는 김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궁중에 진상까지 했다는 광양 김, 광양은 한때 전국 최대의 김 생산지로 이름을 날렸지만 광양 제철소가 들어서고 태인도가 육지화 되면서 사라졌다. 지금은 멀리 충남 서천, 전북 부안, 전남 고흥, 완도, 해남, 강진 등지에서 김이 온단다. 이곳 상인들은 대개 광주 위판장에서 김을 도매로 사온다고 했다.

 

 

1일과 6일에 열리는 광양 오일장의 중심은 거대한 철제 구조를 하고 있는 운동장 크기만 한 건물이다. 이쯤 되면 오일장이 아니라 무슨 대단위 도매시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정말 시쳇말로 시장 한 번 징하고 허벌나게 크구먼.

 

 

그래도 장터하면 역시 국밥과 국수다. 이곳에도 너른 장터 한쪽으로 장터국밥과 장터국수, 어묵 등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몸도 녹일 겸 그중 한곳에 들어갔더니 이미 반쯤 술이 된 중년의 사내가 막걸리 한 잔을 권했다. 예전 같으면 두말없이 잔을 받았겠지만 술을 끊었으니 참는 수밖에...

 

 

어묵과 국물로 몸을 녹이고 나오니 시장 건물 저편으로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뻥'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가게 안쪽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뻥튀기 가게였다.

 

 

할아버지는 열심히 풍로를 돌리고 있고 대신 할머니가 뻥튀기 기사로 나섰다. 갓 튀겨 낸 쌀, 옥수수, 떡국 조각이 포대 가득 담겼고 여기저기 산탄처럼 곡식 알갱이들이 흩어져 있다. 할머니는 다시 통에다 다음 곡물을 넣었다. 장날이면 볼 수 있는 이 풍경이 정겹기만 하다.

 

 

'뻥' 소리 사이사이로 '땅 땅 땅'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장간에서 연장치는 소리다. 조금은 현대화 된 대장간이지만 그 추억만큼은 오래됐다.

 

 

장이 워낙 커서 둘러보는 데만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오일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광양읍내시장...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광양 여행의 참 재미를 느끼지 못할 뻔했다.

 

 

육교를 건너 유당공원으로 향했다. 나의 광양 여행도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유당공원의 숲은 1528년 광양 현감 박세후가 동남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막기 위해 조성한 방풍림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칠성리의 당산은 호랑이가 엎드린 형국인데, 읍내리는 학이 나는 형국으로 남쪽이 허하다 하여 이곳에 연못을 파고, 기를 보하기 위해 수양버들과 이팝나무, 팽나무를 함께 심었다고 전한다.

 

 

연못 주위로 수백 년 묵은 고목들이 장관이다. 천연기념물 제235호인 이팝나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중 4번째로 크단다. 유당공원이란 이름은 못과 수양버들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근대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유당공원 골목길에서 옛 광양역으로 갔다. 철로를 다 걷어낸 옛 역사에는 빈 바람만 남았다.

 

 

그냥 광양을 떠나기가 아쉬워 그 유명한 광양불고기특화거리에 들렀다. 쇠고기를 구리 석쇠에 놓아 참숯불에 구워먹는 이 재래식 고기구이는 이제 광양이라는 이름에 늘 따라붙는다. 1999년부터는 아예 광양불고기 이름으로 축제가 열린다. 예부터 "天下一味 馬老火炙"(馬老: 광양의 옛 지명)이라 했거늘... 광양에 와서 숯불구이를 먹어야만 광양을 다녀갔다는 말이 된다고 했으나 아쉽게도 기차시간이 다 되어 서천을 따라 불고기 거리를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