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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박물관

흑백필름 같은 오랜 건물 한 채의 기억

 

 

 

 

 

흑백필름 같은 오랜 건물 한 채의 기억

- 광양 읍내를 걷다, 광양역사문화관

 

길은 더디고 더뎠다. 매천 황현 선생 묘소에서 3km 남짓 걸었더니 어느새 장도박물관, 1시간가량 다리쉼을 하고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매천 생가에서 만난 문화해설사가 오늘이 마침 광양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며 오후에 가도 보통 장과는 달리 북적댄다며 꼭 가보길 권해 발길을 재촉했다.

 

  ▲ 매천 황현 생가에서 석사마을을 지나 읍내까지 3km 남짓 걸어갔다

 

장도박물관에서 시장 방향으로 길을 더듬고 있는데 눈앞에 육교가 나타났다. 내가 보기엔 육교라기보다는 마치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사방에 긴 다리를 쭉 뻗고 있는 거대한 게처럼 보였다. 육교 층계를 오르니 더욱 가관, 둥근 원을 크게 그리며 앞뒤 좌우 방향으로 공중에서 여러 갈래로 정신없이 나뉜 길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미로 같은, 형이상학적인 육교는 나라 안에서도 찾기 힘들 듯하다.

 

  ▲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육교

 

저만치 내가 가야할 길을 가늠하고 육교를 내려오니 아래로 듬성듬성 나무가 심겨진 제법 너른 공간 사이로 낡은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임을 알아차렸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백운산에 8021ha 규모의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부속기관인 남부연습림이 조성됐다. 최근 환수문제와 국립공원 지정문제로 떠들썩하다. 일본식 건물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 당시 경성제국대학 남부연습림 안에 지은 직원관사로 현재 등록문화재 제223호로 지정돼 있다.

 

  ▲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

 

걸을수록 거리는 깔끔해졌다. 읍내 시가지로 들어선 것이다. 간판들이 하나같이 앙증맞다. 근데 여기도 저기도 다 똑같은 콘셉트다. 역시 관에서 주도한 간판인 모양이다. 간판 보느라 고개를 오른편으로 아예 젖힌 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이 탁 트이더니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순간 몇 십 년 전으로 흘러간 듯, 오래된 건물 한 채가 햇빛 아래로 길게 모습을 드러냈다.

 

  ▲ 광양 읍내

 

금방이라도 머리에 잔뜩 기름을 바르고 높은 옷깃의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을 깔끔히 입은 군청 직원이 뛰어나오고, 돌출된 현관 포치에는 사각의 검은 승용차에서 군수가 내리는 장면이 언뜻언뜻 떠오르는 것이 마치 흑백필름이 눈앞에서 돌아가는 듯하다.

 

  ▲ 광양역사문화관

 

시간을 더듬어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는 옛 군청의 낡은 흑백사진 한 장이 있었고, 소화 17년 8월 25일이라고 적힌 기공기념비가 유리관에 보관돼 있었다. 소화 17년이라면 1942년이니 이때 처음 건립됐다고 볼 수 있겠다. 원래 조선시대 육방들이 업무를 보던 작청이 있었던 곳에 광양군청사가 지어진 것이다. 한국전쟁 때 불이 나서 1951년 개보수를 해서 1968년 2층으로 증축하여 최근까지 읍사무소로 쓰이다 광양역사문화관으로 현재 사용되고 있다.

 

  ▲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가품)

 

건물의 외관과는 달리 안은 최신식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전시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이다. 원래의 것(국보 제103호, 국립광주박물관)이 아님에도 국보의 위용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1951년 개보수 당시의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천장에서도 오랜 연륜이 느껴진다.

 

 

광양하면 으레 도선국사와 옥룡사지를 먼저 떠올리게 마련인데, 조금 관심 있는 이들은 불암산성과 중흥산성을, 매천 황현 선생과 호남 3걸로 불린 신재 최산두 선생을 떠올리게 된다. 이곳에선 패널과 설치물을 통해 광양의 유적과 역사, 관광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전시실 끝 어두운 공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비록 모형 건물이지만 시인 윤동주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설치물. 윤동주 유고를 보존했던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이었다. 이곳의 수고로움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시인 윤동주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기억 못하는 엄청난 불행을 맞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역사박물관 내 서까래는 1951년 개보수 당시 그대로다.

 

  ▲ 윤동주 유고를 보존했던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

 

상설전시실에서 옆으로 가면 기획전시실이 있다. 이곳에선 충․절․의를 자랑하는 광양을 그대로 담은 작품, 장도와 궁시(활과 화살)를 전시하고 있었다. 장도는 인근의 장도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궁시와 함께 특별전시를 하고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박종군 장도장과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12호 김기 궁시장의 작품 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아까 광양역의 지하보도에서도 광양의 여러 특산품과 함께 장도와 궁시를 전시한 것을 볼 수 있었다.

 

  ▲ 장도와 함께 유명했던 광양의 궁시

 

 

밖으로 나와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일제 강점기의 전형적인 관공서 건물인 역사문화관은 1942년부터 2007년(1942-1980년 광양군 청사, 1981-2007년에는 광양읍사무소)까지 65년 동안 광양군청과 광양읍사무소 등으로 쓰이면서 광양의 행정중심지 역할을 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일제가 남긴 잔재라는 단순한 인식보다는 우리가 영구히 돌이켜보아야 하는 반성의 공간으로 남겨야 한다는 걸,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한 부분임을 다시금 새기게 된다.

 

  ▲ 군청사와 읍사무소로 쓰인 역사문화관의 옛 모습

 

  ▲ 비바람을 피해 차를 댈 수 있도록 현관 포치가 설치되어 있다

 

  ▲ 뒤에서 본 역사문화관

 

공간구성이 단순한 옛 광양군(광양읍사무소) 청사는 대지 2천600㎡에 건물면적 700㎡, 'ㄴ' 형태의 벽돌조 단층 건물로 2009년 10월 등록문화재 제444호로 지정됐다.

 

  ▲ 광양역사문화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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